* 이글은 양가의 경제적인 차이로 일방적인 파혼위기의 어떤 여성께 보낸 저의 편지 입니다. 그냥 재미삼아 읽어 주십시오.
[아쉽긴 하지만]
아쉽긴 하지만 님의 경우 제가 뭐라 하기에는 그렇습니다만 참고로 전 50대 초반의 남자입니다. 결론부터 저의 경우를 말씀드리자면 깨어졌습니다. 80년대 초의 일이죠.
우연히(?) 펜팔로 만난 아가씨가 있었죠. 제가 지금은 지방신문사 무명의 편집장이지만 그때는 복학생 신분으로 용돈벌이로 시나 여행기를 잡지사에 기고하고 있었고 당시엔 필자주소가 글밑에 들어갔으므로 여성들로부터 많은 편지를 받았죠. 보통 라면 한 박스 분량 이었고요 그녀는 그중 글씨가 가장 예뻤던 사람중 한 사람이었어요. 당시의 춥고 배고프던 생각 등을 회상하긴 너무 미련하고요.
그렇게 시작하여 몇 년이 흘러 결혼 말이 오가고 상견례에 허연 백발에다 굵게 패인 주름과 거친 손, 시커먼 시골 노인인 어머니와 형님들을 보던 순간 그녀 가족들은 즉각 "노"를 외쳤고, 저와 가족들을 내려다보던 그녀 어머니의 좀 모멸 찬 눈길 등을 눈치 챈 그녀는 울고불고..그후 설득도 끝나고
그래도 전 학교 졸업하는 해에 결혼하려고 노력하며 둘이서 그때 처음 생긴 흑석동 강변의 좋은 예식장도 예약하고 날짜까지 잡았지만 그만 안 되던 군요. 저보고 “돈보고 결혼하려 한다.” 집안이 그 꼬라지..” 운운하는 것은 예상은 했죠. 집안에 관한 것은 정말 참기 힘든 모욕이었지만 이상한 오기가 복수심으로 변해 올라오는 것도 참았습니다.
당시 그녀의 아버지는 제가 다닌 대학의 총동창회장에다 집권 여당의 3선 국회의원이었지만 결국 YS 정권 때 정치자금 문제로 물먹었지만요. 제가 언론사 정치 담당으로 있을 때 자연스레 그를 만났지만 할 말이 없었고 "미안하다" 는 딱 한마디만 들었죠. 그렇게 저에게 당당하던 분이 기자 앞에선 좀 그렇더군요.
결국 남자인 제가 차였죠. 땡전 한 푼 없이 6개월을 하루 라면 두끼로 배 채우던 투박하기 짝이 없는 경상도 시골 출신 고학생에게는 너무 무리였죠. 항상 등록금 마련 때문에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할 고생을 했지만 벌써 20여년이 흘러갔군요.
전 이제 어떤 미련도 없지요. 말하자면 그녀에게 첫 남자였던 전 잊기 쉽지만 그녀는 (착각이지만) 절 쉽게 잊을 수 있을까요. 두 번이나 비싼 등록금을 마련해준 그녀였지만 지금 고마웠던 마음 외에는 추억이니 사랑이니 하는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상대의 마음에 남기는 일도 남는 장사(?)겠죠.
절 잘 이해해주는 너무나 평범했던 집사람이 좋은 탓이지요. 이런 사실을 아는 집사람이 반응을 보려 가끔 물어보기는 해도 기억날게 뭐 있어야지요. 계룡산 갑사앞 민박촌에서 설레던 그날 밤만 기억난다고 하면 전쟁이겠죠??
문학성 보단 재미로
[ 어이쿠 여자얘기 두번째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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