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우동과 국수이야기

책향1 2007. 7. 21. 12:24
 

우동과 국수이야기

 

기차 여행을 많이 다니던 시절 역 어귀에서 파는 냄비 우동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곤 했다. 과거 가께(끼)우동 또는 가락국수라 쓴 간판들이 대도시에 많았다. 장년층에서는 역전 근처의 냄비 우동과 함께 이런 말들이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가락국수는 대전역이나 동대구역에서 파는 것이 일품이었다. 우동이란 음식은 말 자체가 일본어이므로 오늘날 흔히 일본이 우동의 본산이라 생각하기 쉽다. 사실 현재 중국집의 우동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대부분의 우동은 일본 맛이다. 그렇다고 해서 밀로 만든 이 우동이 일본원산이라 한다는 것은 무리다. 물론 일본에서는 각양각색의 우동이 개발되었다. 먼저 우동의 원조를  특정한 음식으로 시작할 것이 아니라 밀가루를 이용한 음식의 기원에 대해 생각해보자.

기록에 남아있는 국수 즉 면류의 기원을 따진다면 그 기원을 고대 중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6세기 전반의 중국 농서인 '제민요술(齊民要術)'에 이미 면을 만드는 요령이나 제법 등 면에 대한 기록이 상세히 기술되어  세계 면 요리의 기원이 중국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끓는 물에 재료를 넣고 재료와 함께 끓여내는 밀가루 음식인 '탕핑(湯餠)'이라는 요리가 오늘날 밀가루 요리의 기원이라고 한다. 초기 중국의 면은 우리가 요즘과 같은 국수 모양이 아니라 우리의 수제비와 같은 형태의 반죽된 밀가루를 손으로 떼어서 끓여먹은 것이 최초의 모양새로 오늘날 중국에도 그런 면류는 여전히 남아있다. 따라서 떡병 자가 붙은 이유이다.

 중국의 면 발명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밀 재배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밀은 기원 전 7천년 경에 메소포타미아에서 재배가 시작되어 그 때부터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던 작물로 바로 이 밀의 재배 기술과 밀을 가루로 만드는 기술이 실크로드를 따라 함께 중국에 전해짐으로 새로운 식문화인 국수가 생겨났다.

 오늘날 우동이란 음식이 일본의 전통음식이고 일본이 면식문화의 으뜸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면류의 일본 전파 후에 일본이 발전시킨 우동의 모습이 굳어져서 생긴 오해들이다.

 우동의 일본 전래에 대해서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이 헤이안 시대(8세기 경) 일본의 홍법(弘法)대사가 중국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돌아오면서 일본의 입맛에 맞는 우동을 전파시켰다는 설이다. 그러나 일본에 면 만드는 기술이 전해진 시기는 7세기 경으로, 100년이라는 시간 차 때문에 이들을 최초의 전파자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일본의 일부 학자들은 한반도에 먼저 면 만드는 기술이 보급된 것으로 보고 그것이 7세기 경에 일본으로 전해져 소바와 우동으로 발전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또, 일본의 한 학자가 쓴 '오모시로햑카(面白百科)'라는 책에는 우동의 원조를 한국의 국수라고 주장하며 우리나라의 국수와 우동을 연관짓는 신빙성 있는 설명도 있으므로 필자는 국수가 우동의 원조로 주장한다 .

그 책의 내용에 오늘날과 같은 국수 모양의 우동은 에도시대(1607-1867)에 조선에서 건너온 원진(元珍)이라는 승려가 국수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는 것이다. 메밀가루에다 밀가루를 섞어 칼국수를 만드는 식으로 국수를 만드는 법인데, 이 방법은 금새 퍼져서 모두들 손쉽게 국수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그 국수를 '운동(うんどん 饂鈍)'으로 처음 불렀는데, 이것이 우동이 되었다.

 우동이 오늘날 일본에서 대단히 발전하고 모양새를 많이 갖춘 탓에 일본고유의 음식이란 주장들도 있으나 일본은 영토 야욕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음식기원독점에 대한 욕심은 대단하다. 2001년 7월 5일 식품 분야의 국제표준인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김치가 일본의 기무치를 물리치고 국제식품 규격으로 승인 받았지만 그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일설에 일본이 간장을 등록을 위해 김치를 양보했다고 한다. 발효된 것이  김치이고 신맛을 내기 위해 구연산을 첨가한  것은 기무치다. 200여종이 넘는 김치 종류 중 빨간 배추 김치만 인증받앗다. 반면 우리나라가 된장과 고추장을 등록하려다 중국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고추장만은 2006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15차 Codex(코덱스) 아시아지역조정위원회에서 우리나라가 제안한 고추장 규격이 4단계 심의를 통과하였고  2007년 7월 초 이태리 로마에서 개최된 제30차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총회에서 우리나라가 제안한 고추장과 인삼제품 규격안이 5단계 심의를 통과했다.

이번 총회 결정에 따라 고추장 및 인삼제품은 향후 2년 내에 아시아 식품규격으로 먼저 등록된 후 일정한 절차를 거쳐 국제 식품규격으로 전환될 계획이다. 고추장은 우리 말 그대로 ‘Gochujang’이라는 영문명으로 규격화가 진행되고  김치(Kimchi)에 이어 우리나라 고유명칭에 의한 국제 식품규격 등록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

두부나 된장, 간장, 기무치 등의 원산이 일본이라 주장하는 것도 일본의 음식기원에 대한 독점욕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두부는 영어로 토푸(tofu), 된장은 미소(miso) 간장은 소이(소유,soy)로 불리고 있다. 바둑의 경우처럼 이 모두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유입되었지만  서양에 없던 음식 등이 일본에서 먼저 알려 짐으로 일반명사화 됐다.

 한중일의 면류의 모양과 맛 등의 특징은 중국이나 한국, 일본이 그 문화의 차이만큼 다르다. 한국의 면식문화는 우리음식의 특징 중의 하나인 복합적인 맛으로 혼합식 면식문화로 발달했으며 일본의 면식문화는 일본음식의 특징인 모양새 중심과 국물중심의 면식문화로 발전한 것이다. 중국의 면류는 면발보다 소스에 중심을 두었고, 한국의 특징은  곁들여진 음식재료에 어울리는 형태로 발전했으며 일본은 면의 맛과 모양에 중심을 두는 것으로 발전되었다. 

 일본의 경우도 우동 국물은 관동지방에서는 가쓰오부시(건조 가다랭이포)로 맛을 내고 관서지방에서는 다시마로 맛을 낸다. 면발 또한 그 차이가 확연하여 관동지방은 면발이 굵고 끈기가 있어 씹히는 맛을 즐길 수 있으며 관서 지방은 찰진 면발이 연하고 말랑말랑한 것이 특징이다. 일본 우동의 근본적인 맛은 간장 맛이 좌우한다.

 우리나라 국수는 현재 흔히 알려진 것으로 따져보면  냉면, 가락국수, 칼국수, 메밀국수,콩국수, 열무국수, 그리고 잔치국수나 비빔국수 등 보편적인 국수가 있는데 수제비도 국수의 일종으로 탕핑과 함께 원시적인 형태이다.

 전 세계에서 메밀로 국수를 만드는 경우는 한국이 처음이다. 일본의 소바 종류가 있지만  원조가 한국의 메밀국수이기 때문에 사실상 독창적인 음식은 아니다.

메밀은 찰기가 없기 때문에 반죽해서 면을 만드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밀가루를 섞어서 반죽하고 면을 만드는데 비하여 한국 전통의 메밀국수는 메밀을 삶아서 그 진한 앙금을  채로 걸러서 찬물이 담긴 그릇에 담근다. 전통방식으로 세계적으로 독창적인 면 뽑기이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같이 육수의 맛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그것에 한발 나아가 첨가되는 재료의 다양함과 어우러짐에 그 독창적이고 맛과 향이 있다. 육수를 중요시 한다는 일본의 우동이 절대 따라올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세계초유의 냉면이다. 한류 바람을 타고 일본 내에서도 냉면 붐이 일어나고 있다. 발음상 냉면이라 하지 못하고 ‘레이멘’으로 간단하게 불리지만 우동처럼 언젠가 자신들이 원조라고 우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