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유배문학관.南海島流し館

충선왕의 유배

책향1 2011. 3. 12. 13:58

 




충선왕의 유배

 

 

 

충선왕(忠宣王, 1275년~1325년)은 고려 제26대 왕(재위: 1298년, 복위: 1308년~1313년)이다. 초휘는 원(願), 자는 중앙(仲昻), 시호는 충선헌효대왕(忠宣憲孝大王). 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의 아들이다.

1277년(충렬왕 3) 세자(世子)로 책봉되고, 다음 해 원나라에 가서 몽골 이름을 받았다. 1296년(충렬왕 22)에 몽골 황실의 진왕(晋王) 감마라(甘麻刺)의 딸 보탑실린 공주를 정비(正妃)로 맞아 원도(元都 : 북경)에서 혼사를 올렸다.

충선왕이 원나라에 있을 무렵 연경에 만권당(萬卷堂)을 설립하여 내외 서적을 모으고, 고려에서 이제현(李齊賢) 등과 원나라의 조맹부(趙孟頫) 등의 학자를 초빙하여 학문을 연구하며 고려 문화 수입에 힘을 썼다.

원나라의 인종(仁宗)이 죽자 간신의 참소로 토번(吐藩,지금의 티베트) 땅에 유배되었다가 태정제(泰定帝)가 즉위하자 유배가 풀려 원나라 대도에 돌아와 2년 후에 죽었으며, 덕릉(德陵)에 묻혔다. 유배 기간 중의 생활에 대해서는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고려사에  

"1320년 12월 무신일에 원나라 황제가 상왕(충선왕)에게 불경을 공부하라는 명목으로 토번 살사결(撒思結)로 유배 보내다." 는 기록으로 그가 먼 유배길에 올랐음을 알 수 있다. 사실상 원 조정의 정쟁에 휘말려 유배길에 올랐다.

살사결은 라사 서쪽으로 450km 떨어진 지역으로 샤카파이고 한역으로 '살사결'이라 불렸다. 이 지역 샤캬파 사원의 기록 그림에는 충선왕이 공부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중국 음으로 “사스”로 불린다.

충선왕은 이곳에서 2년 반 동안 유배 생활을 한 후  도스마라는 곳으로 옮겨 가게 되었다.

도스마는 라사보다는 원나라에서 가깝기는 했지만 역시 먼 곳이고 이곳에서 7개월간 머문 뒤에야 유배에서 풀려났다. 모두 3년 2개월의 긴 유배 생활이었다.

『고려사』의 기록에는 충선왕의 유배 당시 심정을 기록하고 있다.

“내가 운명이 기박하여 이러한 우환을 당하였다. 혈혈단신으로 산 넘고 물 건너 1만 5천리 길을 길을 걸어 티베트로 향하고 있으니 나라의 수치다. ”잠자리에서도 편안하지 못하고 먹어도 음식 맛을 알지 못한다.” “상왕을 시중하던 재상 최성지 등은 도망하여 숨어서 나타나지 않고 오직 직보문각. 박인각가. 전대호군, 장원지 등이 상왕을 따라 유형지까지 갔다." 『익재집』에는 만 5천리 유배길이 묘사되어 있어 상황을 유추 해볼 수 있다. 길이 얼마나 멀고 험했는지 이제현의 글과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36세의 이제현이 방문한 란저우 일대는 원대에 티베트족이 사는 지역으로 도스마(mDo-smad, 朶思麻, 脫思麻)이다. 도스마의 행정 중심은 하주(河州)였는데, 현재의 임하(臨夏)이다.

익재가 충선왕이 유배 중이던 1323년 5월 25일에 길을 떠나서 도스마로 이배된 상왕을 만나려고 베이징을 출발하며 지은 시는 이렇다. 벌과 쉬파리는 주위의 환관을 은유했다.

 


지난해의 괴이한 일은 차마 들을 수 없으니

벌이 독침을 쏘고 쉬파리가 흑백을 뒤섞어

견책하는 글 한 통이 하늘 문에서 내리니

해가 일렁이고 구름 몰려와 천둥번개가 친다.

삼한의 어버이자 황제의 외손이시건만

한번 떠나시니 만리 길에 티베트 땅이라

하늘까지 눈 쌓인 고개는 곤륜산에 이어지며

낮도깨비 휘파람 부는 황하의 원류로다

고개 돌려 바라보니 느릅나무 늘어선 성채

통곡하시어 눈물 마르고 눈도 흐려지신다

의관마저 초라하시니 따돌리지나 않을지

강철도 시달리면 엿가락 된다 하거늘

외로운 신하 혼자 뿐 도와줄 이 없구나.

-익재선생 묘지명-

 


또 “혁선으로 강을 건너고, 소달구지에서 잠을 자야 무려 반년이나 가야 했던 고난의 길”이었다."따라간 사람도 벼슬아치는 두 사람이었고, 나머지는 마부라든지 짐꾼인데 중간에 가다가 다 돌아가 버렸다고 하여 얼마나 멀고 험한 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원 부마국으로 쿠빌라이의 외손자로 태어난 고려의 충선왕은 왕위에 두 번 오르고 티벳으로 유배까지 당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