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이야기
박근혜는 과연 행운아일까? 맞다. 지난 총선에서 고군분투하던 모습을 보면 심지가 굳다. 어찌 보면 여리고 여린 몸으로 거친 대한민국 정치판에 뛰어 들었다. 그녀에게 힘이 실릴수록 부친에 대한 온갖 모욕이 난무했다. 그녀는 정치 무상을 미리 알고 있을 것이다. 경선과정 중 총선에서 도와달라며 손 내밀던 사람들이 자기 살길 찾아 반대편의 수장이 되어 선봉장으로 자신에게 칼날로 돌아 왔을 때와 다 찌그러진 당을 세워주고 경선에 실패했을 때 그는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도 남음이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그녀의 이명박이냐 이회창이냐 갈림길에서 자유 선택권을 주고 싶다. 대통령의 딸로 영화보다는 정신적인 고통이 더 심했을 인간적인 고뇌를 이해한다. 수없는 거짓들의 횡행이 한국 정치판을 어지럽혔음에도 누구하나 제대로 지적하고 교훈적으로 결과를 만들어 준 적이 없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김동길 교수는 전직 대통령 한명에게 죽기 전에 참말을 듣고 싶다고 일갈을 했다. 그말은 서민들의 소박한 바람이다. 왜 우리 정치인들은 식은 밥 먹 듯 하는 거짓말에 불이익이 없었을까? 이는 무지한 대중들 때문이다. 대중들이 인기에 영합했고 체계적이지 못 했다. 누구는 표 찍은 손가락을 잘라 버리고 싶도록 후회해도 결국 대중들의 인기 영합적인 판단에 또는 마녀사냥식 여론에 그냥 넘어간 그 순간적인 판단을 나무랄 수밖에 없다.
박근혜는 사시로 보더라도 역사상 가장 깨끗한 경선을 치른 당사자이고 주인공이다. 연약한 여자로만 보는 이재오식 개인비판가들도 그녀의 지금까지의 행로에 찬사를 보태야 한다. 누가 그녀처럼 제대로 승복하는 시늉이라도 했던가. 이랬던 그녀에게 잔인한 이 나라의 언론들은 결정을 강박하는 짓을 하고 있다. 누가 뭐래도 그녀 자신은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부담으로 작용되는 것을 모르는바 아니다. 직설적으로 몸값이 금값이냐 껌값이냐는 섣부른 무당에게나 적합한 말이다. 왜 그녀를 붙잡고 중년들이 우는가? 서글픈 이 정권 탓도 있지만 배고픈 그 시절 그래도 밥은 먹을 수 있는 “개발 독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라면 박정희 부인 정도로만 아는 자들이 배고픔의 고통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왜 우리가 이 시대에 올곧은 이가 필요하고 청렴성을 따지는가? 부정부패의 파노라마 속에 그래도 우리가 이 사회의 건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지상의 선인 청렴성을 말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국가가 성립되지 않는다. 박근혜, 그녀가 보여준 의지력과 고집, 냉철함은 지금 필요하다. 온갖 유혹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살려가도록 주위에서 도와 줘야한다. 지금 단상 단하의 여러 유혹의 속내가 무얼 말하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의 배신자로부터 자신에게 불리 할수록 유신정권의 탄생에 직접적으로 동기가 없던 그녀를 정치적인 희생양으로 만들려던 그런 세력들이 또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작태를 버려야 한다.
그녀 스스로의 판단에 기름을 붓는 듯한 이 한심한 언론들이 다리를 거는 일이 없어야 한다. 개인적인 선택이 이 나라 정치판의 운명을 좌우할 줄 미리 알았다면 편향적인 기사로 이 여성을 비하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민도 결코 아니면서 이 나라의 여론을 조작하는 짓을 그만 두지 못한 언론들이 또 자신들의 의도대로 끌고가려 한다. 지금보라. 경선 당시 "X치만 달려도 될텐데“로 자위 했던 자들이 이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양심을 가슴 속에만 넣어두고 침묵하고 있을련지 아니면 지나친 편향된 잣대로 부정과 야합하고 그녀에게 돌팔매질하지마라. 양부모를 비탄에 잃고도 꿋꿋하게 일어선 그녀의 청아한 모습을 보기 싫어 면도칼 그어대지 마란 말이다. 그러고도 성형수술 할거라든지 그녀 손을 잡으려는 군중들을 보고 '그녀 손에 뭐가 달렸다'고 시어 등 비아냥으로 무장한 자들에게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라도 한권 읽어라고 권하고 싶다. 이재오 비판이 당권 때문이라는 그자들 역시 그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정권으로부터 배운 수법이다. 뭐라도 순수하면 계속 비판논리를 개발하여 단말마격 공격으로 살아나려한다. 최근 ‘박근혜에게 말한다‘의 저자 김세현은 서두에서 ”다른 정치인에 비해서 (박근혜대선 후보)가 비교적 정직하고 현명하다고 했다. 그의 명확한 의도를 소개할 필요는 없지만 그녀의 현명함은 이제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천우신조의 기회가 그녀에게 왔다. 인사를 다하고 천명을 기다린 탓이다. 결코 감상적일 수 없는 정치판에서 부디 그녀의 혜안을 흐리게 하는 자들은 자중하기 바란다. 이 나라의 현명한 대중은 그녀 쪽이다. 행운은 이제 참고 기다린 그녀의 몫이다. 그 몫은 결코 사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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