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道のそばで

이창년 시인의 근작시

책향1 2007. 5. 30. 10:03
꽃의 무게

시.이 창 년



이슬 머금고
따뜻한 볕을 쏟아주고
땅은 어스러지면서 힘살을 밀어올리는지
그 이유를
꽃은 모른다
먼 바다가 파도소리 내며
나무들이 몸부림치며 바람을 일으키는지
그 까닭을
꽃은 모른다
꽁꽁 얼어붙은 어두운 밤
별들도 숨어 버리고
땅은 천천히 식어가고
벌레들조차 떠나버리면
비로소
꽃이여
네가 꽃의 무게를 느꼈을 때
우리들의 만남이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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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흔드는 것은

시.이 창 년


우리는 손을 흔든다 헤어지면서
흔드는 손이 아스라할 때까지
고개 돌려보고 또 돌리고는
뒷걸음 치다가 사라진다
우리의 거리는 보이지 않는만큼 멀어지고
문득 보고 싶을 때
해질녘 강가 미루나무도 예사롭지 않더라
손을 흔드는 것은
얼마만큼의 시간 뒤에 만날 것을 약속치만
더러는
영영 못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을
나이 들면서 알게 되고
잊혀져 가는 사람들 가운데
저미는 그리움 있다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것이냐
이제는
외로움이 나의 것만이 아니라는 걸
떠가는 구름보고 알 수 있듯이
한번쯤
헤어졌던 곳에 와서
어두운 밤 별을 헤어도 보고
손을 흔들어 보는 것도 야속한 것만은 아니야
흰머리 바람에 날리며
주름잡힌 눈에 핑그르르 고이는 것 있어
별빛이 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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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한 자락의 바람일 수 있을까


시.이 창 년

바람 속에서 태어나
바람 속으로 사라지는
이 세상 모든 것이여
저 바람의 숨결
저 바람의 오만을 어이하랴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고
느낄 수 있지만 잡을 수 없네



비탈진 산길에서
굽이도는 물가에서
머무는 듯 닿는 듯
절묘한 우연으로 스치며 지나가는
우리들의 사랑마저도
덧없는 아름다움으로 남겨놓네

떨어지는 여린 꽃잎에도 일어서고
작은 새들의 젖은 날개짓으로도 무너지는 것
나 죽어
한 줌 흙이여
그대 한 자락의 바람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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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속에 묻혀서도

시.이 창 년

너를 미워하지 않을래
너를 탓하지도 않을래
언제 우연히 만나거든
서러운 이야기는 하지 말자

봄비 내리면 젖어주고
찬바람 불면 움추리고
어스러지게 간절하여 못 견디면 허물어지마

너 알았음을 인연으로 할래
너 알았음을 고마움으로 할래

갈가마귀 날아가거던
내년에도 오라고 손짓하마
내후년에도 오라고 손짓하마
땅속에 묻혀서도 손짓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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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 이야기


시.이 창 년

밤만 되면 집을 뛰쳐나가
바람 잡고 너울너울 춤을 추던 아이는
긴-대꼬챙이에 달을 따서 꽂아 메고
쇠똥망태에 별을 주워담으면서
온 동네 누비다가
서낭당 돌무덤 곁에 누워
긴 한숨으로 휘파람분다

휘파람 소리 하도 靈妙하여
丹靑같은 뱀이 돌무덤에서 기어나와
우글우글 망태 속으로 들어가고
망태 안에 별들과 어울려
새끼치는 짓을 한다

쑥 냄새가 안개 피는 젖은 몸에
별빛을 묻혀
하나 둘 은하가 되어 하늘을 날은다

그 아이는
돌무덤 곁에 누워
숨결 같은 은하의 날개 소리를 들으면서
뱀딸기를 입에 문 채 잠이 든다

밤마다
나를 유혹하던 그 아이 이야기를
지금은
아무도 들려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