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16년 전 쯤 스포츠 신문에 연재했던 필자의 글입니다만 그때와 용어나 사회분위기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회원 여러분이 싫어하시지 않으신다면 약 15편정도를 올릴 예정입니다.
[술은유죄]
아마 그때가 스무 대여섯 살이 되던 때로 기억이 된다. 휴교령으로인해 글을 쓴답시고 세상을 등지고 싶어 입산을 생각할 정도로 사뭇 그때나 지금이나 방랑벽이 심할 때 였다.
고향 친구 중에 K라는 대중가요를 작곡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필자와는 같은 예술(?)을 한답시고 우리는 의기투합하여 자주 어울리고 그 친구 집에 가서 술도 마시고. 기타도 치며 무료하게 나날을 보내곤 했다. 유명 가수에게 작사, 작곡을 해 줄 정도로 중앙에서도 신인 작곡가로 제법 실력이 알려진 친구였다.
그러나 그는 몇 년 전부터 안타깝게도 홀어머니와의 생활을 위해서 인근에 있는 삼류 카바레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사는 것이 무언지 아까운 젊은 작곡가를 돈 때문에 잃은 것 같아 여간 섭섭하지가 않았다.
어느 날 그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자기 여자 친구가 삼바 파티란 술을 사놓고 갔는데 같이 먹자는 것이었다. 술이라면 그때나 지금이나 사족을 못 쓰는 필자인지라 웬 떡이냐며 마늘쫑에 고추장을 발라 둘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배고프고 가난했던 시절이어서 그런지 삼바 파티 술 한 병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금새 사라졌다. 술을 먹다만 기분으로 필자가 인상을 찌푸리자, K는 어머니가 담가놓은 사과주를 즉시 통째 가져왔다. 둘은 사과로 담근 술단지를 가운데 놓고 작은 바가지로 술을 퍼서 서로 권하며 예의 마늘쫑에 웬간히도 마셨다. 안주도 변변치 않은데다 젊은 둘이 속사포처럼 마셔대니 취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사과주 술단지가 바닥이 보일 무렵, 둘은 취한 채 방에서 그냥 쓰러져 잠들어 버렸다.
그렇게 얼마를 잤을까. 머리가 아프고 갈증이 나서 눈을 떠보니 사위는 캄캄한 밤이 되어 버렸다.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밖으로 나가서 마당 담벼락에 쉬 한번 하고 감나무 아래에 서 있는 작두질 펌프로 물을 뽑아 타는 목을 냉수로 적셨다. 그리고 비척거리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잤다.
그렇게 또 얼마를 잤을까. 옆에서 이상하게도 화장품 냄새가 진동을 했다.
눈을 스르르 뜨고 옆을 보니 같이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자던 친구가 아니고 여자인 듯한 검은 물체가 깜깜한 방안에서도 어렴풋이 있음을 느꼈다. 별안간 이상한 예감에 불을 켜보니 아뿔싸! 옆에 누워 있는 사람은 친구 K가 아니고 그의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 아닌가. 그것도 서로 얌전하게 누워 자는 게 아니고 흉포한 필자의 손이 치마를 걷고 그녀의 허연 속살을 만졌는가 하면, 쑥색 상의 블라우스 단추를 풀어 제치고 불룩한 젖가슴을 매만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아! 이 일을 어쩌란 말인가!
술이 확 깨는 기분으로 문을 박차고 나왔다. 마루에서 신발을 신으며 방문을 보니 친구 K의 방이 아니고, 평소 여동생이 기거하는 옆방이 아닌가?
아니, 그럼 내가 밤에 물을 마시고 정신없이 들어간 방이 친구 방이 아니고 그녀의 방이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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