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경쟁시대의 지역언론(기사용)
김용엽
한국문인협회 남해지부 사무국장. 시인
미국의 재벌 조지프 퓰리처(1847∼1911)의 유산 200만 달러를 기금으로 제정된 퓰리처상은 1918년부터 매년 저널리즘과 예술 부문의 22개 분야에 걸쳐 수상자를 선정한다. 올해 제90회 수상자 중에서 특이하게도 우리지역 언론이 본받을 만한 사실이 있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미국의 언론 재벌은 세계적으로 그 정보력이나 영향력이 막강하다. 따라서 올해에도 메이저 신문에서 많은 부분에서 이 상을 수상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몰고 온 대재앙과 후유증을 보도한 미국 멕시코만의 2개 지역신문이 올해 퓰리처상 저널리즘 부문의 공공봉사 분야에서 공동 수상했다.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의 ‘타임스 피커윤’과 미시시피 주 빌록시의 ‘선 헤럴드’이다.
두 신문은 카트리나 참사로 본사가 긴급 대피하고 배달이 끊기는 상황에서도 재난 뉴스를 보도해 영예의 공공봉사상을 받게 됐다고 퓰리처상위원회가 17일 발표했다. 타임스 피커윤은 긴급뉴스 분야에서도 수상했다. 막강한 자연의 힘인 카트리나 대재앙도 신문은 막지 못했다. 두 신문은 재난이 닥친 직후엔 온라인만으로 신문을 냈고, 이후엔 전 직원이 자매지에서 찍은 신문을 들고 나가 이재민 텐트를 돌며 배달하기도 했다.
여기서 이 두 지역신문이 주는 처절한 교훈은 ‘사명감’이다. 언제까지 신문의 정체성이나 경영 문제를 논하기에는 우리지역에서 시간이 없다. 신문사 창간작업시의 순수한 열정 즉 사명감은 이 지역에 새로운 언론의 장을 여는데 일조를 했다. 다섯 개나 되는 지역 신문 중에서 일부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그 때 그 때의 광고료에만 의지하는 신문이 유지되고 있는 사실은 숨길 수 없다. 전국적인 지역 언론들의 실상이라고 자위할 수도 있지만 신문이 공공성과 진실 보도나 여론 선도, 지역 문화발전 등의 기본적인 의무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으로 경영권과 편집권의 완전한 분리가 마땅하다. 이는 말이 쉽지 경영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신문이 편집권만 분리된다고 좋은 신문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한 경쟁 시대에 돌입한 지역 언론들은 지역사회와 주민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 즉 지역 언론은 스스로가 지역주민들이 급속한 사회 환경 변화에 적응해나가고 지역사회 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문화적 토대 혹은 토론의 장을 열어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지역 언론은 지역주민, 사회단체, 기업 등이 자립한 지역사회 공동체의 실현과 발전을 지향하여 구체적인 활동을 하기 위한 기지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야 한다. 따라서 지역 언론은 지역사회의 문화적·경제적 자립을 위한 봉사기능을 한층 더 강화함으로써 지역사회의 통합과 연결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지역 언론은 지역사회의 생활이라는 측면에서의 언론·보도기능을 경쟁적으로 확대함으로써 주민들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지역사회 문제를 주민과 함께 혹은 주민을 대신해서 해결하는 기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여러 가지 지역 언론의 역할과 순기능을 극대화하고 독자들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
하는 것이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의 경쟁력은 기사의 질과 독자에 대한 서비스를 높이는 방향으로 새로운 지역 언론의 성장 동력의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
지역 언론이 스스로 경계해야 하는 것은 경영적인 문제 등을 쉽게 해결하기 위해서 독자들의 악취미에 영합하는 일이다. 실제 독자들의 감정에도 악취미가 어느 정도 섞여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제나 “국민은 하늘”이지만 그 뜻이 모두 천성(天聲)이 될 수만 없는 것은 여론이 가끔은 부화뇌동(附和雷同)하기도 하고 가끔 시기도 하거나 이해관계로 교묘하게 진실을 감추기 때문이다. 지역 언론이 지역민의 정서를 담는다는 핑계로 너무 안이한 나머지 세론을 정제(精製)하지 못하고 세론만을 업을 때는 폭군과 같다. 다수의 목소리가 민심의 척도가 물론 아닌 만큼 소수자의 작은 의견이 반동분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과거 중앙의 매스컴들이 결국은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을 “옷로비” 사건이나 최근의 “황교수 논문조작 파문”에 대한 보도를 보면 지나치게 선정적이었거나 지나친 편향성을 보여 그 글을 읽는 진실의 최종 수신처인 독자들이 편파적으로 편이 갈라지는 혼란을 초래하였다.
이는 언론들의 앙심이었고 표적 보도였다. 또한 의견(義犬)이 물에 빠진 어린이를 구했다는 보도가 수십 년 전에 대부분의 신문 지상에 보도되었으나 결국 오보로 밝혀진 적이 있다. 이는 통신사가 적어주는 글을 확인도 해보지 않고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보도한 탓이다. 다시 말해 언론들의 앙심으로는 사회 지도층의 책임을 논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즈가 언론 보도에서는 자신들에게 적용된다는 점을 너무 간과했다. 이러한 보도행태에서 언론사 자체의 품위가 전혀 없었다는 점을 알 수 있고 독자들의 열독열을 신경 쓴 나머지 이슈 꺼리 찾기에 골몰한 우리 사회의 공통된 특성 즉, 냄비 근성을 여실히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메이저 신문들의 행태도 그런데 하물며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인 지역 언론에서 조차 괘념(掛念)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라 치부하지는 말아야 한다. 나름의 한계를 벗고 품위 있는 기사로 얼마든지 경쟁력을 기를 수 있다. 사명감으로 똘똘 뭉치고 진리 보도를 위한 최전방의 전사로 기자들이 나서고 기사 작성에 성의를 다할 때 경쟁력 확보는 물론 나아가 두터운 독자층의 확보나 광고주의 확보로 이어져 최고의 지역 언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희망을 세계 최고 권위의 언론상을 받은 미국의 이름 없는 두 지역 신문사가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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