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의 세상읽기

어떤 실무자와 ‘외교적 수사(修辭)’

책향1 2007. 9. 5. 14:24
 

                          어떤 실무자와 ‘외교적 수사(修辭)’

  수많은 미로와 어두운 이미지의 이스탄불이 최근 화려한 모습으로 변신하고 있다고 한다.  007 영화를 비롯한 많은 이스탄불의 소개 매체들이 어두운 모습을 즐겨 이용했기 때문이지만 ‘내 이름은 빨강’이 터키의 유명한 소설로만 이름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성취를 이루어냈다. 16세기 이스탄불을 잘 그려낸 이 소설은 회색빛이고 비역동적이던 도시를 역동감이 살아있고 색깔 있는 도시로 만든 것은 바로 소설 즉 문화의 힘이다. 경춘선에 ‘김유정역’이 생기고 ‘토지’를 있게 만든 것이 하동이고 ‘탁류’를 의미하고 그린 것은 군산이라 할 수 있다. 남이섬에 일본인관광객들로 들끓게 하고 주인공의 동상을 세우게 하는 것도 ‘겨울 연가’이다.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이들 문화적인 자산이 그 지역을 의미 있는 지역으로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다. 메밀꽃이 필 무렵 봉평 역으로 몰려드는 많은 사람들은 그 지역의 관광시설이 좋아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어떤 단체의 문화 사업에 대한 협조 공문이 인터넷에 오른 적이 있다. 공문을 많이 다뤄보지 않은 분들이 적은 공문이 조악하게 보이고 내용이 부실해 보이는 점은 어쩜 당연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상대의 일부 실무자의 대응을 보면 그 내용의 타당성 여부와 결과와는 관계없이 외지의 민원인에게 우리 군의 나쁜 이미지를 주고 기분을 상하게 하는 듯해서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우리 스스로 흑백 논리에 강해서 다른 의견을 무시하기도 하고 도리어 질시하는 경우를 일상에서 종종 경험한다. 자신이 모든 문화 사업을 전적으로 책임진 듯 강렬한 톤으로 정제되지 않고 쏟아내는 거친 반대 논리는 상대를 기가 질리게 하고 민원인을 감정적으로 모는 듯해서 볼썽사나웠다. 같은 말이라도 좋은 말로 우회적으로 표현해도 될 말을 실무자가 민원인에게 직설적으로 쏟아낸다는 점이 의외였다는 것이 옆에서 지켜 본 필자의 소회이다. 또한 대화를 통한 이해의 폭을 넓히려는 노력보다 일면식도 없어 보이는 분들에 대한 일관된 부정적인 시각이 어디서부터 형성되었는지 그 점이 참 궁금하다.

  서양인들이 일본인들과 협상을 할 때 “고려해보겠다”는 말을 긍정적인 답변으로 판단하여 여러 번 실수를 하다가 결국은 일본인들의 고려한다는 말은 부정의 의미가 포함된 우회적인 ‘외교적인 수사’였다는 점을 한참 후에 깨달았다고 한다. 상대방은 답답하기가 짝이 없을지 몰라도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실속을 차리고 외교적으로나 대외적으로 큰 마찰을 일으키지 않거나 교묘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하여 속으로는 환호성을 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일본 외교관들을 만나 본 한국인들은 그들의 정보력에 혀를 내두른다고 한다. 어떤 일본 외교관의 식사 초청으로 만난 한국의 정치인은 그 외교관이 이 정치인의 고등학교 시절의 친한 친구 이름과 성적까지 아는 듯해서 도리어 무서웠다는 후일담을 읽은 적이 있다. 임오군란 후 일본과 맺은 불평등 조약인 제물포조약의 일본 대표 하나부사 요시타다(花房 義質)는 제물포에서 서울까지 가마를 타고 오면서 가마꾼의 발걸음 수로 거리를 계산했다는 이야기는 그들이 얼마나 치밀한지를 말하고도 남음이 있다.  

  여기서 일개 실무자의 소신을 일본 외교관까지 동원하여 설명하는 수고는 사실상 무의미할지 모르겠다. 때에 따라 소신 있게 처신해야 하는 것도 공적인 실무자의 소임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별나게 짜증나는 일이 많은 이 시기에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마음의 여유와 실력에서 나오는 ‘외교적인 수사’ 이다. 나름의 소신에 따른 행동을 하기 전에는 사전에 충분히 내막을 파악하고 폭넓은 이해력으로 민원인을 대했더라면 충격으로 3일간이나 몸져눕는 일이 일어나지 않거나 민원 내용의 성사 여부와 관계없이 좋은 이미지를 남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잃어버린 아쉬움이 크다.  ’하루가 피어도 꽃은 꽃이다‘란 말은 정감어린 해학으로 유명한 우리 지역 출신의 국회의원이 과거 임시 당대표로 선임된 후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한 말이다.

  거금을 들여 완성한 스포츠 파크가 개인의 재산이 아닌 전체 군민의 자산이고 비교적 잘 활용되고 있다. 관광을 미래의 성장산업으로 불철주야 그 발전을 위해 매진하는 모습은 매우 훌륭하다. 단지 문화적인 상품이 최고의 관광 상품이란 중요성과 그 영향력을 감안 한다면 사세한 부분까지 꼼꼼히 살펴보면 지역의 문화 수준 향상과 지역 출신 유명 인사들의 활용은 반드시 이 시기에 필요하다. 반대논리에 이끌려 같은 동향인이 동향인의 문화적인 가치나 인간적인 도덕성을 평가 절하하는 일은 절대 없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이 어려운 경제 상황을 서로 도우며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실무자들의 문화 마인드가 CEO 보다 뒤쳐질수록 늦은 밤 이런 글을 적을 수밖에 없는 고통은 항상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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