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얼빠진 문화재 보호

책향1 2021. 11. 14. 10:28

얼빠진 문화재 정책

 

남해선소왜성이 민간의 야영장 건설을 위해 훼손됐다는 한겨레신문 1111일자(https://www.hani.co.kr/arti/area/yeongnam/1018958.html) 보도에 따라 많은 논쟁이 있다. 놀라운 점은 (선소 우회도로가) 있는 곳까지 외성이 있었다는 점을 관계 공무원들이 몰랐다는 점이다. 그동안 연구자들에 의해 이미 왜성 지적도가 완성되어 있고 일본인 학자가 그린 지적도가 번역만 하여 입구 안내판에 있다. 이 지적도는 남해군 공식 블로그 남해랑썸타자의 “아픈 과거의 흔적을 잊지말라 알려주는 고마운 흉터-남해 선소왜성과 장량상마애비“(https://blog.naver.com/namhae_gun/221391848105)에도 있다. 필자는 이미 일본인들의 놀림거리가 된 안내판의 저작권 위반 등 문제점을 기사화한 적이 있다. (남해신문 20. 3. 23일자 참조. http://blog.daum.net/kyys56/7147301)    하지만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필자의 지적에 당시 남해군 학예사는 도리어 선소왜성을 옮겨야 합니까라고 뚱딴지 같은 소리나 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비전문성에 기인한 예의 갑질 현상으로, 일반인의 지적은 무시하다가 주요 언론의 보도에는 화들짝 놀라 허겁지겁하는 모습은 어이가 없다.

 

남해군의 대표적인 문화재 훼손은 2011년 봉천사 묘정비의 유배문학관 경내 이전 사건이다. 읍 터미널 우회도로 건너편에 있던 이 비를 건설업자에게 맡겨 트럭으로 옮긴 사건이다. 당시 관계자들은 구차한 변명을 했지만 문화재를 현상 보존도 않고 옮긴 사실은 문화재 훼손에 해당되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차후 사적으로 담당자는 필자에게 문화재 위원들이 회의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하여 스스로 불법임을 자인했다. 문화재 이전을 위한 법적인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라 상주면 벽련마을의 마을 안길 공사로 훼손된 양지 암각화도 있다.

 

선소 왜성이 일본 침략의 증거라며 보존의 가치는 전혀 없다는 인터넷 등의 반론이 있었다. 침략의 흔적을 후세에 남겨 교훈으로 삼는 것도 나쁘게만 볼 수 없다. 정유재란 당시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졌던 사천 선진리 왜성의 복원을 눈여겨봐야 한다. 선소왜성의 외성이 있던 지점은 급경사로 인해 출입이 제한됐던 지역으로 본성이 있는 곳보다 일부 잔존상태가 양호했다. 본성의 경우 천수각의 기단부 주변을 제외하고 경작을 위해 많이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외성에는 특히 우리나라 성의 치()에 해당되는 소리()와 구루와(曲輪)가 완벽하게 남아 있었다. 한겨레 신문의 보도 사진을 보면 사실상 외성 성벽을 따라 그 위에 옹벽 등을 만들고 있어 원상 회복은 물 건너 갔다.

 

유네스코 협약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문화재는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보편적인 뜻이 함축되어 있다. ‘문화재는 있어야 할 자리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 논리다. 역사와 더불어 전통으로 자리매김한 산물이 문화재다. 그래서 문화재는 역사의 제자리를 떠나서는 결코 가치를 세울 수 없는 속성을 갖고있다. 문화재 보호의 근간을 흔드는 일에 당시 일부 언론과 인사가 동조하고 남해군이 나서는 일은 궁색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문화재 보호를 계도해야 할 남해군이 나서서 자신들의 문화재법 위반 논란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보였다. 지금도 여전히 달라진 모습은 보기 힘들다.

 

아래 사진은 야영장 진입로 확장을 위해 훼손되기 전 외성의 일부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마지막 사진으로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수직 쌓기가 아닌 전통적인 일본 성벽 쌓기 모습이 보이는 역사적인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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