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 생각
이미 고속도로 진입로 공사로 깡그리 사라진 옛집에는 한때 모란꽃이 만발했습니다. 뒤안에도 우물가에도 아닌 방바닥에 활짝 피었지요. 불이 안 드는 구들 고치고 울퉁불퉁한 방바닥에서 피었지요. 조카들 구멍 내던 간장 빛 장지문에 어울리지 않게 피어있었지요. 가끔 어린 내가 오줌을 싸면 이불을 들고 군불로 말린 그 오줌 먹고 자랐지요. 꽃잎은 겨울바람 실하고 문고리 쩍쩍 소리 내면 살며시 아랫목에서 피어났지요. 손바닥보다 큰 꽃에 군용 담요 깔고 민화투 치던 어머니가 똥광을 내면 흑사리 껍데기를 냈지요. 모란 꽃잎 색 입술연지 바른 작은 형수가 시집오던 날도, 동네어귀에서 떠나는 던 날 얼굴에 파리똥 칠갑한 옆집 처자 손수건 주며 아쉬워했지만 방바닥에 누운 모란은 말이 없었습니다 실한 아스팔트에 눌렸는지 쓰레기장 구석에서 한숨 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란꽃을 보며 ‘행복’을 생각해야 하는데 소죽솥 김 같이 사라진 옛 추억만 가슴에 한 움큼 쥐고 있습니다 행복일거야 애써 자위하는 머뭇거림에 남의 집 담장 밑 난데없이 붉은 패랭이꽃 깔깔 거립니다.
2015.1.4 12;26 노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