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과 언론자유
최근 현직군수가 지역 언론사를 상대로 하는 고소를 하면서, 명예훼손소송과 언론자유에 관한 논란이 야기되고 있다. 특히 가짜혈서 의혹 사건에서 서로가 양보할 수 없는 제로섬 게임을 하여 보는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자신의 군정수행에 인터넷언론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하여도 공직자인 군수의 도덕성이나 업무처리의 정당성에 대한 언론의 자유에 관한 논의의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과거 언론자유와 관련된 명예훼손소송에 있어서는 형법 제310조에서 정한 바에 따라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법리만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변호사가 월간 잡지를 상대로 한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대법원판결(1988. 10. 11.자 85다카29)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여론의 자유로운 형성과 전달에 의하여 다수의견을 집약시켜 민주적 정치질서를 생성 유지시켜 나가는 것이므로 표현의 자유, 특히 공익사항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헌법상의 권리로서 최대한의 보장을 받아야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였다. 위 판결에서는 "(언론기관이) 공표한 사실이 진실이라는 증명이 없더라도 행위자가 그 사실을 진실한 것이라고 믿었고, 또한 그렇게 믿는 데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시하였다.
이는 표현의 자유나 프라이버시권리에 관한 법리가 비교적 발달한 미국에서의 명예훼손 소송의 기본적인 법리인 현실적 악의의 법리만큼 우리나라에서 표현의 자유의 범위를 더 넓힌 획기적인 판례이다. 위 대법원 판례는 그 이후 우리나라 법원에서 제기되는 모든 명예훼손소송의 기본 판례가 되었다. 현실적 악의의 법리(actual malice rule)란 원고가 명예훼손 소송에서 승소하기 위하여서는 피고가 그 내용이 허위임을 알았거나 허위인지 여부를 무분별하게 무시하고 사실을 공표하였음을 입증하여야 한다는 법리를 말한다.
원래 언론사를 상대로 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쪽은 주로 허위보도나 과장보도의 희생자가 된 일반인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부터 공인들, 특히 고위공직자가 언론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언론기관이나 법조계의 일각에서는 공인들이 자신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기 위한 방편으로 명예훼손 소송을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민사소송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전략적 봉쇄소송(SLAPP: Strategic Lawsuits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에 대한 특별기각제도"에 대한 논의와 이러한 입법에 대한 검토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 제도는 정부기관(입법, 사법, 행정) 등에 대한 비판은 민주제도의 핵심으로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에, 정부기관, 대기업 등인 원고가 적법한 소송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피고에 대하여 거액의 변호사비용이나 징벌적 손해배상금 등의 경제적인 부담을 주려고 제기하는 소송을 억제하려는 입법으로 이를 "SLAPP motion 제도라고도 한다.
다시 말해 비판하는 자에게 재갈을 물리려고 과중한 경제적인 부담을 주려한다는 말이다.
이 제도는 공인들이 자신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기 위한 방편으로 명예훼손 소송을 악용한 경우이고 피고가 그 소송을 초기단계에서 기각시켜달라고 신청할 수 있게 한 특별절차이다. 그 특별절차에서 원고는 피고가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여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으로 부족하고, 피고가 허위의 사실이라는 것을 인식하였거나 최소한 사실 확인도 하지 아니하였음을 입증하여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원고가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기각판결과 함께 특별절차에 소요되는 피고의 비용을 부담하게 되므로, 정부기관 등으로 하여금 이러한 소송을 제기하기 어렵게 하였다.
이신범 전 국회의원의 국적문제에 대한 보도내용에 대하여 캘리포니아주 법원에 언론기관인 KBS와 KTE(KBS의 미국 자회사)를 상대로 명예훼손소송을 제기하였던 사례가 있다. 그런데 위 소송에서 이 전 의원은 위와 같은 SLAPP motion제도에 따라 명예훼손의 개연성(probability)을 입증하지 못하였다고 하여 상대방의 변호사비용 등으로 미화 약 11만 불을 도리어 배상하라는 내용으로 기각판결을 받은 바가 있다고 한다.
남해에서는 과거 언론사 임모 편집국장과 당시 현직 군수와의 명예훼손 관련 3년여의 송사가 있었지만 결국 2003년 1월 경 대법원은 언론인의 손을 들어줬다. 이 당시 언론인의 무죄 판결은 역시 원고인 군수가 피고 언론인 임모씨가 “허위의 사실이라는 것을 인식하였거나 최소한 사실 확인도 하지 아니하였음을 입증”하지 못했고 독자들의 알권리를 위해 “허위사실 공포”를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인들이 우리나라 법원에 자신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기 위한 방편으로 명예훼손 소송을 악용하여 제기한 경우에 대하여는 SLAPP motion제도에 나타난 법정신을 원용하면 무분별한 고소 남발을 줄일 수 있다.
민사소송법 제254조 제4항에서 소송절차의 촉진과 심리의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재판장이 소장을 심사함에 있어서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구체적인 증거방법을 적어 내도록 하거나 서증의 등본 또는 사본을 제출하도록 명하게 한 제도를 두고 있다. 그리하여 위 제도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그 명령에 따르지 못하는 경우에 소장을 각하하도록 방안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명예훼손과 언론소송에 관하여, 대법원은 민변 등 시민단체가 한국논단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소송에서 대법원은 "공인의 정치적 이념에 관한 의혹제기에 있어서는 진실에 부합하는지 또는 진실하다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에 대한 입증의 부담을 완화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02. 1. 22. 2000다37524).
또한 대법원은 대전법조비리사건의 보도와 관련하여 어느 검사가 문화방송과 담당기자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소송의 판결(대법원 2003. 7. 22. 2002다62494)에서, "공직자의 도덕성이나 업무처리의 정당성 여부는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만큼 이들에 대한 언론의 자유는 보다 두텁게 보호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따라서 대법원은 명예훼손과 언론소송에서 공인에 대한 비판의 허용 폭을 확대함으로써 언론의 자유를 우월한 것으로 보는 취지의 판결이 거듭되고 있고, 이는 대법원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할 것이다.
즉 현재 대법원은, 공공적 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사안에 관한 표현의 경우에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하여야 하는 것이고, 특히 공직자의 도덕성, 청렴성이나 그 업무처리가 정당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부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감시와 비판기능은 그것이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닌 한 쉽게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공직자 등의 소송, 고소 남발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개인의 권익을 보장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법원의 확고한 판례 등에 따르면 언론기관이 악의적으로 일부러 비방보도를 하지 아니하는 한, 대통령을 포함한 공인에 대한 언론보도는 더욱 넓게 그 언론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위와 같은 소송이나 고발 남발은 결단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현직 군수가 군민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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