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유배문학관.南海島流し館

수카르노의 유배

책향1 2011. 4. 3. 09:50

 

수카르노의 유배

 

동부 자바에서 출생했다. 고교시절부터 민족운동에 눈 떠, 1920년 반둥공과대학 입학 때는 ‘형제수카르노’로 유명하였다. 1928년 국민당을 결성하여 민중주의(民衆主義)를 주창하다가, 1929~1933년 투옥 후에 플로레스섬의 엔데, 수마트라섬의 펜쿠렌에서 유배생활을 보냈다. 1942년 일본군에 의하여 석방되어 일본군에 협력하였다. 수카르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도네시아를 다시 식민지화 하려는 네덜란드에 맞서 독립 전쟁을 벌였고 1950년 독립을 쟁취하면서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재임 중 그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가 신생국 인도네시아의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가 엘리트 의 지도적 역할을 강조하는 교도 민주주의 제창하기도 했는데 그의 대담한 외교 정책으로 미국의 미움을 사면서 아시아의 히틀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가 화려한 성공과 종신집권의 꿈에 도취한 사이 인도네시아 내부는 지역갈등, 정쟁, 경제 난, 빈곤으로 곯아가고 있었다.

1955년 제1회 아시아아프리카회의(반둥회의)를 주최, 비동맹중립외교의 주역으로 각광을 받았는데, 내정면에서는 다당난립 때문에 단명내각의 연속이었다. 1957년 그는 내부혼란의 원인이 서구형 의회정치에 있다고 하여 대통령중심제를 채택, 촌락민주주의의 전통에 입각한 이른바 교도(敎導)민주주의를 제창하였다. 그 후 국내에서 절대권력을 장악하고, 네덜란드에 대항해서 서(西)이리안해방투쟁을 전개, 1963년 목적을 달성하고 종신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1965년 9월 30일에 발생한 쿠데타에서 공산당을 감쌌다고 하여, 1966년 3월 장군 수하르토가 지휘하는 반공 육군에 실권을 넘겨주고, 이듬해 종신 대통령의 지위를 박탈당했으며, 정치활동이 금지된 가운데 보고르 교외의 바트트리스의 자택에 살다가 정계복귀도 못한 채 죽었다. 딸은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이다. 그린란드(Greenland)에 이어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뉴기니(New Guinea)는 16세기 초 이 지역에 상륙한 포르투갈 항해사 메네데스(De Jorge Menetes)가 원주민들의 피부색과 머릿결을 묘사하여 이 지역을 곱슬머리라는 뜻을 가진 파푸아(Papua)라고 부르기 시작하였으며 원주민들도 이 명칭을 수용하였다고 한다. 1454년에는 스페인 선장 레데스(Inigo oertis Retes)가 비악(Biak)과 맘버라모(Mamberamo)강 유역을 탐사하게 되었는

데 원주민들의 모습이 아프리카 남쪽 기니 원주민들과 유사하다하여 스페인어로

“Nieava Guinea"(New Guinea) 라고 불렀고 이 지역을 장악하기 시작한 네덜란드 인들은 1770년부터 그들의 언어인 Nieuw Guinea"로 개칭 하였다. 해외 식민지전이 극에 달했던 1895년 5월 16일 제국주의 영국, 네덜란드, 독일은 협상테이블에 앉아 뉴기니섬 동쪽은 영국, 서쪽은 네덜란드, 그리고 동쪽의 일부와 기타 지역은 독일에 귀속되도록 분할하였다. 섬의 서쪽 부분을 차지하게 된 네덜란드 식민당국은 1926년과 1927년 사이 서부 자바와 서부 수마트라 지역 공산당 봉기때 체포한 좌익분자와 1930년대에 투옥하기 시작한 민족운동 정치범들을 그들의 식민지 영토 내에서 가장 척박하고 견디기 어려운 몰루카(현지말 말루꾸) 반다 나이라(Banda Naira)섬과 네덜란드령 뉴기니 섬의 내륙 지방인 보벤 디굴(Boven Digul)에 캠프를 설치하여 이들을 수용 하였다. 이 기간 동안 네델란드 당국은 총 1,308명의 정치범들을 체포하여 그 중 823명을 보벤 디굴 군, 따나 메라(Tanah Merah)로 유배를 보내 그들 중 상당수가 희생당하고 만다. 이 지역은 디굴 강(Sungai Digul) 상류에서 내륙 쪽으로 500Km나 떨어진 외진 곳이었으며 파푸아 지역 내에서도 말라리아모기가 가장 창궐하였고 이 지역 원주민들은 외지에서 온 사람들의 머리를 베어 집에 걸어두면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는 풍습까지 있었다. 초대 대통령을 지낸 수카르노와 부통령을 지낸 핫타 도 이곳까지 끌려 왔다가 용케 살아남아 일본군이 진주하면서 자유의 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