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와 남해 미공군추도식
일본 가고시마(鹿兒島) 지란(知覽)이라고 하는 작은 시골마을의 오래된 도미야여관(富屋旅館) 복도에 65년 동안 걸려 있는 한국사람 사진 한 장.
현관에서부터 특공대(特攻隊)와 '호타루(반딧불이)'에 관한 액자와 문구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여관은 오래전, 한 한국 사람과 깊은 인연이 있는 집이었다. 주인 도리하마 하쓰요씨는 태평양전쟁 당시, '가미카제' 로 악명 높은 특공대 기지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 그의 어머니(도리하나 도메)가 이 집에서 식당을 하고 있었는데, 특공대원들이 외출 나오면 이곳에서 식사를 하곤 했다. 그중에는 미쓰야마 후미히로(光山文博·한국명 탁경현)도 자주 드나들었다. 아들이 없던 그의 어머니는 아무도 면회 오는 이가 없었던 그와 모자처럼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그는 출격하기 전날, 작별 인사를 할 겸 찾아왔다. 그는 저녁을 먹으며 "오늘이 마지막이니 내 고향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다. 눈물을 감추려는 듯 모자를 앞으로 당겨 얼굴을 가린 채 그는 '아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한 서린 목소리로….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모녀가 그를 위로하자, "만일 제가 죽어 영혼이 있다면 내일 밤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반딧불이 되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고 했다.(이상은 조선일보 2010.12.9일자 신문에서 최길시씨의 에세이에서 발췌)
경남 남해에도 65년 동안 해마다 이국인 추도식이 열린다. 올해는 지난 11월17일 남해 제일약방 3층에서 정현태 남해군수와 주한 미군을 대표해서 부산 55보급창 사령관 베철러씨가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1945년 8월 7일,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에 남해 상공을 날던 미군 폭격기 비(B)-24 2호기가 사천의 일본군 비행장을 폭격하고 귀대하다 일본군의 고사포에 맞아 망운산 옥조봉에 추락한 사건이 있었다.
식물 종자 연구차 망운산을 등반하다 이를 목격한 고 김 덕형씨는 전사한 11명의 미 공군기 탑승자 전원의 시신을 거두었고 이 자리에 그들의 넋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다.
“둘째형이 미얀마의 라시오에서 전사했습니다. 누구라도 형의 유해를 잘 거둬 어쩌다 꽃 한 송이라도 놓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일입니다. 국적은 달라도 사람 마음은 다 같다고 생각해요. 아니 그렇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64여년 간 김 씨는 매년 추도식을 열고 전사자들을 위로했다. 올해 초 작고하여 아들이 유업을 계승하여 65회 째 추도식이 거행되었다.
이 일로 김 덕형씨는 미국 정부와 유가족들로부터 수많은 감사의 인사를 받았고 1958년 초등학교 6학년 초등 도의 교과서에 이 일화가 소개되기도 했다.
여기서 양 사건의 공통점은 65년이란 햇수와 태평양 전쟁 와중에 벌어진 사건이란 점과 영혼들의 사진이나마 먼 이국땅에 있다는 점이다. 두 사건 모두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일어난 사건이고 전쟁과 관련돼 있다. 가해자인 일본에도 불쌍한 조선인의 넋이라도 기리 듯 사진을 걸어 두고 있고 사연이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남의 전쟁에 끌려가 아까운 청춘을 버린 점은 미군이나 탁씨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미국 덕으로 해방이 되었기에 추도식을 거행 하는지 모르겠다. 패전국 일본은 아직 반성은커녕 억울한 이국 청년에 대한 사죄도 없다. 이런 일본이 현대 사회에서 문명국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 참 이중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