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스크랩] 책향의 술나라 기행 4

책향1 2006. 12. 21. 01:16

 

[말이 통하던 꽃-해어화]

 

요즈음 고급 요정이나 그럴듯한 술집에 가 봐도 풍류를 아는 기생은 찾을 길이 없다.

젊은 미인들만 있다.

예전에는 시와 창(唱), 거문고와 장구를 다룰 줄 아는 멋과 지조를 갖춘 기녀가 있었다.

그래서 훌륭한 기녀를 해어화(解語花), 즉 말이 통하는 꽃이라고 부르며 존중해 주었다.

황진이도 바로 그런 해어화 중의 한 사람이었다.

동짓달 기난긴 밤 / 한허리를 버혀내여 / 춘풍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 얼은 님 오시는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외롭고, 긴 밤에 언제 올지 모를 임을 향한 정한을 한 켜씩 모으는 여심이 처연하다.

곱게 접어둔 그리움을 임이 오는 날 밤 굽이 펴겠다니 얼마나 아름다운 밤이 되겠는가.

황진이는 지조뿐만 아니라 문장도 뛰어나 박연폭포, 황진이와 더불어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렸다. 송도 삼절은 송도의 뛰어난 세가지 즉 박연 폭포, 서화담, 황진이를 말하나 이말 자체가 황진이가 송도의 세가지 꺽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데서 나온 말이다. 오죽하면 백호 임재는 평안 감사로 부임해 가는 길에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가 눈물을 뿌리며 안타까워했을까.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었난다 / 홍안은 어디가고 백골만 누었는가 /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임금의 명을 받들어 부임지로 떠나는 감사가 일개 천한 기생의 무덤에 찾아가 술을 부었다고 해서 조정에서 말썽이 일자 그는 초연히 벼슬을 버리고 방랑하는 풍류객이 되었다.

기생 황진이는 시와 무용 등 예기에 능하고 용모 또한 출중하여 뭇 한량들이 그녀를 휘어잡고자 갖은 방법을 동원해 유혹의 손길을 뻗었다. 그러나 그녀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남자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름 아닌 화담(花潭) 서경덕이었다. 이밖에 이매창, 소백주, 부용, 홍장, 한우, 명옥, 문향, 다복, 송이, 계월향, 구이지, 천금 등이 시문(詩文)과 노래가 뛰어난 명기(名技)들이다.

그런가하면 이들 중에는 계월향, 홍장, 춘절, 김섬, 애향, 연홍같이 나라를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한 의로운 기생도 많았다.

평양기생 계월향은 임진왜란 당시 왜장 고니시의 부장에게 사로잡힌 몸이었다.

수청 들기를 강요받지만 계월향은 기지를 발휘해 수안 조방장 김응서를 왜군 진영에 끌어들여 왜군 무장의 목을 베고 탈출한다. 그런 다음 그녀는 왜놈의 씨를 잉태했다 해서 자신의 배에 단검을 꽂고 자결했다.

논란이 있지만 주논개(朱論介)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진주성을 점령한 왜군의 전승 축하연에서 왜장 게야무라 로구스케(毛谷村六助)를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져 순절한 여인이었다. 진주 촉석루에는 논개의 의로운 기상을 기리는 순의비가 있다. 그 곳에는 수주 변영로의 ‘논개’라는 시가 이슬처럼 알알이 맺혀 있다. 과거 ‘기생파티’는 일본에서 인기 있는 한국관광 품목이었고, 지금도 일본 동경의 환락가인 신쥬쿠에는 약 2만 명의 한국 여성이 일본인들에게 술을 따르고 있다.

출처 : 책향의 술나라 기행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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