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돌호박
책향1
2014. 8. 21. 09:33
돌호박
지나가던 신당 앞에
오래된 돌호박 하나 있다
온동네 사람들이 깨소금을 찧거나 고추를 빻았지만
이젠 볼품없이 녹슨 철사에 의지하여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곳에 겨우 서있다
호박은 언젠가 쪼은
그 누구의 마음이 정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화강암을 깎아 스님 머리처럼 파르라니
나온 넉넉한 뱃살로 맏며느리감이더니
울퉁불퉁한 몸매로 동네 아줌마들 온갖 소리
다 듣고 안으로 삭힌 깊은 속정
절구에 단련된 몸매로
힘든 시집살이 녹여 냈을
여전히 입이 큰 돌호박
맏며느리 역할 충분히 하고
어느새 오래 되어 낡고 늙어
살이 빠져 홀쭉한 돌호박
금이 간 마음 철사줄로 묶여
이제 누구도 잘 들여다보지 않는
뒤란에서 홀로 생각에 빠져
깊은 속으로
비 맞으며 무엇인가 자꾸 안을려고 한다.
2014.8.21 9;38 노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