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와 정광용
비대위와 정광용의 승리
정광용 회장의 구속이 그렇게 환호할 일인가?
그리고 그들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인가?
희희낙락하는 세력이 있고 가슴아파하는 세력이 존재한다.
천우신조의 기회로 천지개벽할 일이라도 생긴 일인가. 일반인인 우리가 같은 뜻으로 뭉친 우리의 동지가 구속되어 많은 수단이 제약된, 손발이 묶인 사람에 대해 너무 가혹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 그것은 반대하는 성향이 있거나 찬성하는 성향 문제가 아니다.
자연인인 우리 주변에 상상도 못할 또 다른 길, 이 상황에 무슨 비대위 활동이냐.
카페지기가 수감되는 상황이 대기업 총수가 구속되거나 공무원이 구속 되는 일과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비대위까지 생기는 현상은 도리어 박사모의 위상을 쉽게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카페 운영과 관계없는 일에 환호작약은 남의 아픔이 나에게 기회라는 세태를 적나라하게 알리는 나쁜 선례다.
아니면 패거리 정치, 우리나라 기존 정치의 잘못 된 면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 금도를 넘은 이런 패거리는 호텔에 모여 구호를 외칠만한 사연이 있는가. 누구에게나 개인 사감이 있을 수 있다. 좀 더 인터넷 카페의 설립배경이나 목적에 충실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없다. 개인 사감은 밥 먹여 줄 일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일도 아니다.
회장 구속이 그렇게 박장대소할 일인지 그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큰 목적에 개인적인 신상에 치명타가 될 일에 나서기 싫어하고 피하는 것이 세인들의 처신이고 보면 어쩜 정광용씨의 구속에 더 단합하고 한목소리를 내야 함이 옳다.
그대들의 정의에 물어 보겠노라.
모델 국회의원과의 투쟁으로 인한 구속이 정회장 자신의 안위를 위한 길이었는가?
누가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지 눈여겨보라. 자신의 순탄한 길을 저버린 행동이 저 관기만도 못한 일인가. 누굴 비난하고 누구를 옹호해야 하는지 도덕시간에 배우지 못했는가.
건곤일척은 이런 일을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니다. 인터넷 카페지기 자리와 사감 대리 해소만족에 조자룡 헌 칼 휘둘러서야 어디 남자라 칭하기 힘들다. 아님 썩은 무 조각이라도 베야 남자라면 저기 무밭으로 가야 한다.
진리를 외면한 채 부르짖는 공허한 목소리에 넘어가는 어설프고 무딘 정의감은 그 곳에서 난도질함이 적당하다.
어쩜 정광용 회장은 현재 ‘뤼순’ 감옥에 있다. 그가 자신을 넘어선 초아의 정신이 새로운 박사모의 나아갈 길을 역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만한 정신이 아니고서야 어디 박사모의 존재 가치가 있는가.
이는 홍문연에서의 승리를 예고하고 지략가의 모습으로 그를 쇄신시키는 기회이지
호텔에서 구호 외치고 버스 대절하고 숲속에서 막걸리 마실 일이 결코 아니다.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정의감과 희생정신은 그를 감옥으로 가게 했지만 그를 잊지 못하는 영원한 기회를 이 평범한 회원에게도 각인시켰다.
홍문연에서의 승리만큼 그의 삶에도 영광스러우리라.